범블비 후기 :: 트랜스포머는 잊어라
2007년 <트랜스포머1> 개봉 당시 국내 기술로는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엄청난 그래픽과 화려한 액션 그리고 빠른 상황전개로 인해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영화에 집중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나 트랜스포머 1편을 제외한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개봉을 거듭할수록 혹독한 혹평에 시달렸고 어느새 트랜스포머는 '욕 하겠지만 일단 본다.' 라는 이상한 흥행공식이 생겨버린 영화가 되었다. 때문에 스핀오프 형식으로 <범블비>가 제작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번엔 마이클베이가 감독이 아니라는 좋은 소식에 한 숨 덜긴 했지만 그래도 트랜스포머는 트랜스포머니까 기대감은 바닥에 내려놓고 영화관을 향했다.
영화 처음부터 사이버트론 전투 액션 장면으로 시작해 엄청난 시각효과로 인해 일단 시작부터 눈이 즐겁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이거에 4번이나 속았었지.. 그래도 이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던 사이버트론에서 오토봇과 디셉디콘이 대립하는 전투장면을 만나니 좋긴하다. 스핀오프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이전 시리즈에서 대사 한 줄로 훅 지나갔던 것들을 영상으로 제대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다. <반지의 제왕>을 보고 <호빗>을 봤을때와 비슷한 느낌.
범블비와 주인공의 만남이 주요 내용이 된다는 것 자체는 트랜스포머 1편과 상당히 유사하다. 차이점은 주인공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것인데 성별만 바뀌었을뿐 소심한 고등학생이 범블비를 만난 뒤 마음을 열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변화하는 기본적인 상황 전개는 똑같다. 상황전개는 똑같지만 영화가 어떤 이야기에 집중 하는지는 판이하게 다르다.
<트랜스포머1>는 액션, <범블비>는 만남 그리고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아버지를 잃고 친구 및 가족까지 접근하지 못할만큼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아 놓고 하루하루 아버지만 그리워하며 사는 여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노란색 낡은 자동차(비틀)을 가지게 되는데 직접 자동차 수리를 하다 오토봇으로 변신하는 범블비를 만나게 된다. 디셉디콘의 공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범블비는 여주인공을 경계하지 않고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 여주인공이 마음을 열게 만든다. 범블비와 교감 하면서 아버지가 없는 자신은 혼자라고 여기던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에게 다가오려 노력하던 가족들과 친구에게도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 결국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물론 <트랜스포머1>도 만남과 성장이 있긴 하지만 인싸를 꿈꾸던 남주인공이 범블비를 만남으로 인해 쭉빵 여친을 사귀게 되는 것이 성장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것이 기존 트랜스포머와 가장 다른점이 아닌가 싶다. 여주인공의 성장기가 눈물 날 정도로 엄청나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도 <범블비>의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와 액션이 없는 장면에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 초반 사이버트론에서의 전투장면이 워낙 화려했던 탓인지 지구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밋밋하기 그지 없다. 오토봇은 범블비 하나, 디셉디콘은 딸랑 둘만 나와서 싸우니 임팩트 있는 장면이 거의 없다. 로봇들이 싸우는 것은 이미 전작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라서 그런지 조금 식상 하더라. 가장 기대했던 액션이 초반 몇분을 제외하면 별로 볼 것이 없으니 상당히 아쉬웠다. 의외로 CG가 제 역할을 한 장면은 액션보다 여주인공과 알콩달콩하며 범블비가 조금씩 변신하는 장면이 훨씬 더 볼만했다. 상반신은 로봇 하반신은 바퀴, 트렁크만 팔로 변하는 등 이런 장면이 의외의 재미를 불러온다. 기존 시리즈처럼 엄청난 액션장면을 기대했다면 그런 기대는 내려놓는 게 좋다.
뭔가 큰 역할을 할 것 같았지만 별로 한 것 없이 갑자기 착한아저씨 모드로 바뀐 군인아저씨. 어디서 봤던 것 같긴 한데 어디서 봤더라.. 영화 끝나고 찾아보니 WWE 레스링 선수 출신 '존 시나' 였다. 레스링 선수 출신 배우로 가장 크게 성공한 더락(드웨인 존슨)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캐릭터도 비슷비슷하다. 만약 <범블비> 후속작이 나온다면 존 시나 역시 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토봇과 공조하여 디셉디콘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가만.. 오토봇, 군인, 공조,, 이거 말 하다보니 <트랜스포머1>이 되고있네...; 트랜스포머를 잊을 수 없구먼.ㅎ
<범블비>.기존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크게 실망해 기대감이 메마르다 못해 갈라진 사람들에게는 큰 단비가 될 작품이다. 흥미있게 잘 짜여진 각본 없이 액션만 가득하던 기존 시리즈와 확실히 다르다. 범블비가 지구로 오기 전후 과정, 교감을 통한 여주인공의 성장, 범블비가 목소리를 잃게 된 이유, 범블비 이름이 왜 범블비 인지 등등 액션보다는 인물간 관계에 집중하여 액션장면이 많지않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역시 영화는 시각효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이야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범블비>를 보며 다시 한 번 느낀다. 혹시 또 욕만 먹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트랜스포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리없이 즐겁게 볼 수 있을 정도의 영화가 탄생하여 굉장히 기쁘다. 괜히 어거지로 범블비2 만들지 말고 이대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돈이 되니 아마도 2편이 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지금 딱 좋은데 그냥 1에서 끝냐..
별점 : 4개 반